총체적 고질병 ‘빈곤한 안전의식’ 개조해야

 

{ILINK:1} 현재 개봉을 앞둔 ‘무방비 도시’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조직적인 소매치기단에 무방비로 노출 당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 40명의 귀중한 인명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사건 역시 무방비로 노출된 ‘안전불감증’이 빚은 대참사에 다름 아니다.

대형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후진국형 인재’라면서 ‘건축허가 과정에서의 편의제공, 소방 준공검사, 사용승인 등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조사해야 한다’며 한바탕 난리법석을 떤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왜 대형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사후약방문’ 식으로 ‘뒷북’을 쳐대며 온 사회가 들썩이는 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안전불감증에 의한 대형참사만 하더라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인천히트노래방 화재, 대구지하철 참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고를 겪어왔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인가.

연초에 터진 이번 냉동창고 대참사에서도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목청껏 ‘안전불감증’에 대한 빈곤의식을 질타한다. 우리는 왜 대형사고를 불러오기 전 철두철미한 무장으로 안전의식 생활화가 안되는 것인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사고는 10년 전 부산에서 발생한 범창콜드프라자 화재사건과 닮은꼴이라는 점이다. 당시에도 신축중인 냉동 창고 내벽에 우레탄 발포작업을 하던 중 발포기에서 발생한 불티가 건물 안에 가득 차 있던 유증기에 옮겨 붙으면서 폭발과 함께 불이 나 인부 27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를 빚었었다.

그런 끔찍한 사고를 겪고도 후진국 형 사고를 다시 당한 것이다. 대형 참사의 배경에 항상 잠재되어 있듯이 `설마’하는 안전 불감증은 우리사회의 고질병이다. 지난해 말부터 연초에 이르기까지 대형 사건사고가 너무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 7일 발생한 서해 유조선 기름 유출사건은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등 피해규모도 정확히 산출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같은 달 25일 남해에서 화학약품운반선이 침몰하면서 선원 14명이 희생되더니 다시 대형 폭발사고까지 빚고 있다. 같은 날 서울의 학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300명의 학생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까지 겹쳤다.
특히 이번 냉동창고 대참사는 유증기가 가득찬 밀폐된 지하공간에서 불섶을 지고 작업을 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말대로 ‘죽을려고 작정한 미친 짓’이라고 밖엔 할 수 없다.

안전불감증은 갑자기 우리를 생과 사의 갈림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 화학물질로 가득한 창고에서 안전장비 하나 없이 작업한 이들도 문제였지만 사고가 났을 때 이를 진압할 만한 설비 역시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으며, 넓은 창고에 출입문이 단 하나였다는 것 또한 안전불감증을 실감케 했다. 공사 현장에 소화기라도 있었다면, 창고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돼 물어 뿜어져나왔다면, 비상구가 더 있었다면, 고통 속에 ‘몰살’된 생명들이 지금 가족들 품에 있지 않을까?

가스안전공사나 전기안전공사에서도 사고원인을 조사한다고 하지만 ‘사후약방문’ 식으로 조사만 하지 말고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앞으로 안전당국은 현장안전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고, 강력한 법집행으로 안전관리감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번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져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번과 같은 동일한 사건이 더는 터져선 안된다. 이는 진정 소박한 바람이다.
<정성태 기자/ jst@sanup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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