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분기마다 연료비 변동분 전기 요금에 반영키로
연료비 변동분 요금에 반영…한전 재무 왜곡 개선
유가 폭등 시 정부가 요금 조정 보류할 수 있어
신·재생, 온실가스 배출권, 석탄발전비 등 기후·환경요금 별도 고시
요금조정 제한-요금 미조정 기준-정부 조정 유보 등 '3중 보호장치' 구축

그동안 미뤄왔던 전기요금 원가연동제가 내년 1월 1일부터 전격 시행된다.

정부와 한국전력 이 국제유가 등 원가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요금체계 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기후·환경요금을 따로 빼서 고시해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기후·환경요금에 석탄발전 감축 비용을 새로 추가한다. 유가 폭등 시 전기요금이 급등하지 않도록 정부가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3가지의 소비자 보호 장치를 걸어뒀다.

한 달에 200kWh 이하의 전기를 쓰는 가구에게 월 4000원을 깎아주는 '주택용 필수사용공제 할인제도'를 조정한다. 내년 7월부터 일반 가정에 대한 할인율을 50% 낮추고 2022년 7월에 폐지한다. 전기를 쓰고 싶어도 가난해서 못 쓰는 저소득층이 아니라 1·2인 가구라서, 체류 시간이 짧아서 등의 이유로 전기를 덜 쓰는 중산층에 필수공제 제도의 혜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이런 내용의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올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개편안을 발표하기로 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에너지 수요 위축, 유가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연료비 하락→비용 감소) 등으로 명분이 약해지면서 시기를 올 하반기로 미뤘었다.

지난 11일 한전 정기 이사회에서 관련 안건이 채택되지 않아 연내 발표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16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전기공급 약관 변경(안)을 산업부에 제출했다. 이날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부가 인가를 완료하면서 안을 확정해 발표하게 됐다.

'연료비 조정요금' 항목을 요금 안에 새로 추가한 게 핵심이다. 분기마다 연료비 변동분(기준 연료비-실적 연료비)을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한다.

김종갑 한전 사장이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더 싸다"고 할 정도로 왜곡됐던 체계를 개선한 만큼 한전의 재무 구조가 안정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준 연료비는 직전 1년간의 평균 연료비를 의미한다(올 12월=지난해 12월~지난달까지 반영). 실적연료비는 직전 3개월간의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유류 등의 평균 연료비를 의미한다.

유가 등 연료비가 폭등할 경우를 대비해 ▲요금 조정범위 제한 ▲요금 미조정 기준 마련 ▲정부 조정 유보 조항 구축 등 3중의 보호 장치를 걸어뒀다.

우선 기준 연료비가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조정 요금을 1kWh당 5원 범위에서만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주택용 4인 가구 월평균 사용량(350kWh, 월 5만5000원) 기준으로 하면 내년 4월부터 한 달에 최대 1750원까지 요금이 조정된다.

내년 1~3월까지는 1kWh당 3원 범위로 조정하게 되고, 월 최대 1050원 규모로 요금이 조정될 수 있다. 산업·일반 월평균 사용량(9240kWh, 월 119만원) 기준으로는 월 최대 4만6000원(1~3월은 2만8000원)까지만 요금 조정이 가능하다.

분기별로 1kW당 1원 이내로만 원료비가 변동될 경우 전기요금을 조정하지 않는 기준을 세웠다. 요금을 너무 자주 조정해 불필요하게 혼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단기간에 유가가 폭등할 경우 정부는 물가당국과 협의해 전기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유가 폭등으로 원룟값이 뛰면 한전이 정부에 변동분을 산정해 요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요청하게 된다"며 "이때 산업부가 한전의 요청을 반영할지 말지를 물가 당국과 협의해 결정하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 말해 유보 권한은 '정부가 연료비 폭등에 따른 전기요금 조정 필요성을 판단할 권한'이라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최근의 저유가 흐름이 전기요금 인하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가격 신호 기능이 강화되고,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전기를 소비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후·환경 요금을 별도로 고시하는 체계를 마련한 점도 눈길을 끈다. 기후·환경 요금은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 비용(RPS),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비용 (ETS), 석탄발전 감축 비용 등으로 전체 전기요금의 약 4.9%를 차지한다. 주택용 4인 가구 월평균 사용량 기준으로 한 달에 1850원이, 산업·일반용 월평균 사용량 기준으로는 월 4만8000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편에선 RPS(1kWh당 4.5원), ETS(1kWh당 0.5원) 비용은 전력량 요금에서 분리만 하고, 석탄발전 감축 비용(1kWh당 0.3원)만 새로 반영된다.

산업부는 RPS는 2012년, ETS는 2015년부터 시행돼 온 제도인 만큼 새로운 요금 인상 요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를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비용'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고 했다. 석탄발전 감축 비용은 기후·환경요금 증가 요인인 만큼 전기 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탄발전 감축 비용 반영은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 등에 따른 것"이라며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도입 때 2000여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약 60%가 '전기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한 만큼 사회적 합의도 어느 정도는 거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아니라 전기를 덜 쓰는 중산층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을 받던 필수공제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필수공제 혜택을 받는 가구의 81%가 중상위 소득계층이고, 78%는 1·2인 가구였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필수사용공제 할인제도 적용 대상은 991만 가구 4082억원에 달했다.

내년 7월부터 일반 가정에 대한 할인액을 월 4000원에서 2000원으로 깎고, 2022년 7월엔 일반 가구 할인적용을 폐지한다. 취약계층 약 81만 가구(연 139억원)에 대해서는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 신청을 미처 하지 못한 약 55만~80만 취약계층 가구를 발굴해 월 8000~1만6000원의 복지 할인을 제공한다. 연 882억원 규모다.

또한 필수공제 축소로 쌓아둔 재원 중 약 500억원을 내년부터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 환급 지원사업' 등에 쓴다. 적용 대상은 한전의 복지할인 대상 취약계층 가구다.

산업용·일반용 전기에 적용하던 '계절별·시간대별 선택 요금제(계시제)'를 주택용에도 도입한다. 쓴 만큼 기본요금을 내는 '누진제'와 달리 '계시제'는 기본요금을 많이 내고 전기를 많이 쓰는 계절·시간별로 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체계다.

계시제는 내년 7월 제주 지역부터 우선 시행한 뒤 적용 지역 확대를 검토한다. 계시제를 시행하려면 스마트미터기(AMI)로 시간대별 전기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주 지역의 AMI 보급률이 가장 높기 때문에 제주부터 계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산업부와 한전은 내년 1월부터 10kW 초과 자가용 신·재생 에너지 설비에 대한 할인특례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체 특례 적용 소비자의 88.7%를 차지하는 10kW 이하 설비에 대해선 특례를 3년 연장한다.

아울러 정부는 한전 및 전력 그룹사의 비용 관리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한다. 앞으로 5년간 전력공급 비용 증가율 상한을 3%로 설정해 약 7조~8조원을 절감하도록 유도한다. 현재 연 1회 시행 중인 전기요금 총괄 원가 검증을 상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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